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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日常記録) 2015. 10. 1. 23:00

     

     

     

     

     

     

     

     

     

     

    1998년 9월9일 나의 결혼식.

     

     

     

    오랫만에 앨범을 꺼내고

    그 안에서 청첩장도 꺼내보았다.

     

    썼다가 지웠다가

    참 많이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서 정리한 한 마디,

     

     오셔서 축하해 주시겠어요?

     

     

     

    청첩장을 보면서도 그때 그날 생각이 많이 되살아났다.

    누구의 결혼도 그렇게 다 비슷하다지만...

    내 결혼식인데도 내가 주인공이 아닌 그런 기분.

    결혼의 이런 저런 절차를 준비하면서도 그랬지만.

     

    청첩장을 주문하며 여러가지 준비된 미사여구를 싹 지워버리고

    그냥 한 마디로 -오셔서 축하해 주시겠어요?-만 넣으면서

    체한 것 처럼 답답했던 속이 조금은 풀렸던 기억이 새롭다. 

    맹랑한 기도 있었던 것 같다.

     

     

     

    결혼식날은 날씨가 무척 좋았지만

    전날 잠을 못자서 아침부터 속눈썹이 무거울지경이었다.

    가슴답답한 파이어스타일의 드레스를 고른 걸 후회했다.

     

    전날 저녁에도 일찍 쉬려다가 갑자기,

    이바지음식이 생각나서

    꽤 잘한다는 현대백화점의 이바지음식 전문코너에 주문하러 다녀오고

    꽃시장에 들려 부케만들 꽃을 사가지고 돌아오니 몸이 천근만근.

     

    잠도 안오고 부케를 어찌어찌 만들기는 했지만

    너무 만져서 오히려 꽃이 시들어서

    한밤중의 전화로 웨딩드레스샵에 부케를 부탁했었다.

    결국 나의 결혼식 부케는 2개.

    나중에 두 명의 친구에게 부케를 주었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시댁에 들고가는 이바지음식.

    그 무렵에도 그런건 생략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고,

    남편도 미리 알았다면 하지 말라고 말렸겠지만

    나는 열심히 그저 했다.

     

    혼자서 준비하는 결혼이란 그런 것.

    나는 이제야 찬찬히 그때의 나를  이해한다.

     

    결혼식날 나는 무척 씩씩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신부측 가족은 나 혼자.

    내가 다 인사하고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친구와 손님들이

    가족사진 찍을 때도  친구들 사진 찍을 때도 그대로

    두 번 사진을 찍었고..

    엄마가 손님처럼 결혼식에 참석했지만

    나의 지인들을 아는 것도 아니고  소리를 낼 수도 없고

    그저 다른 손님들처럼 있을 수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누구에겐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때 엄마에게...내 결혼식에 와줘서 고맙다고 얘기할 걸 그랬다.

    여러모로 불편한 시선이 신경쓰였다면 거기까지 생각했다면

    선물만 보내고 안오는 게 편했을지도 모르는 일.

     

    엄마와 나의 지나간 세월이야 어쨌든

    결혼식에 와준 건 고마운 일이었구나, 이제 그렇게 생각이 된다.

    엄마로서 엄마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으리라,

    그때만큼은.

     

    그 날, 나의 신경은 온통 시댁쪽으로만 뻗쳐있어서

    어떠신지, 괜찮은지 그런 생각 뿐이었고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야

    결혼 전 마지막 직장이었던 pd와 팀원들에게

    따로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뭐가 중요한지 내 결혼식을 위해

    어떤 걸 꼭 챙겨야 했는지

          그렇게 많은 메모를 해놓고도...

     

     

     

    아무리 친구와 지인들이 두 번씩 사진을 찍으며 마음을 나눠주었다고 해도

    순서대로, 어느 결혼식과 다르지않게 가족사진을 찍을 때

    끔했던 마음은 잊혀지지 않는다.

    울지는 않았다.

    갑자기 생긴 일도 아니고

    나는 나의 상황에 무척 분한 편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전문사진가에게 부탁한 사진들이 웃기게 엉망으로

    특히 얼굴쪽이 두 겹 세 겹 핀트가 어긋나게 나와서 황망했다.

    모두 유령처럼 형태가 부르부르한 가족사진이라니.

    보기에도 너무 안좋아서

    결국은 내손으로 그 앨범을 일일히 잘라서 몇 번이고 다시 싸서 버렸다.

    사진기사분이 민망한 얼굴로

    -언제고 기회될 때 불러주시면 제가 가족사진 다시 찍어드릴께요...라고.

    사실, 그게 그래서 될 일인가.

     

    사진따윈 아무럼 어때...남편이 그래주기도 했지만

    사진비용을 지불하지 않게 되면서

    한동안 그 돈으로 즐겁게 지냈던 반전도 있었다.

    사진은 친구들이 찍은 기념사진으로 몇 장 남아있었고...

     

    언제나 완전히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친구들도 많이 그랬다던데

    우리도 신혼여행 가서 많이 싸웠다.

    결혼을 준비하며 고단했던 여러가지 마음이

    거기서 폭발했던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하니 남편도 나도 가엽다.

     

    어떻게 해도

    내 편인 사람들은

    나의 실수도 무엇도 감싸주고

     

    다른 각도로 나를 보는 사람에겐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노력으로 안되는 부분이 있는 것.

    그저 다 풀어놓고 무슨 일이 닥치든간에

    내가 주인공,

    내 스스로를 소중히 여겼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내가 부끄러워 할 일은 없었는데

    그런 것에 너무나도 오랫동안 스스로를 괴롭혔다는 생각이

    이제 드는 것이다.

     

     

    +

     

     

    올해로 결혼 17년.

    내가 늦은 편이었고

    적령기에 결혼해서 아이들이 다 큰 친구들에게

    좀 더 살아보렴..그런 소리 많이 듣는다.

    글쎄..글쎄다.

    주변에 어떤 사람은 결혼30년이라고 해서

    내가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네요? 했더니 얼른,

    아무렴!

    그래서 함께 웃었다.

    웃다가 찔끔 눈물이 날만큼...

    나중엔 배도 아팠다.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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