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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내일이 추석인데
신영이랑 지유가오카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북해도 우유 전문점이라고
모든 요리에 북해도산 우유와 치즈, 버터가 듬뿍.
이렇게 편해도 되나.
내일이 추석인데...
도쿄로 이주한 지 12년째이지만
실제로 이런 자유로움을 느낀 것은
얼마 안 된다.
특히 명절이 다가오면 늘 초조했다.
잠깐의 통화에도 거짓말은 싫어서
이런 이런 음식들을 했다고
그러려고 뭔가 준비하는 기분이었다.
3년 전에 갑자기 시어머님이 돌아가셨고
그 후로는 시아버님께
생신과 명절에 음식들을 주문, 보내드리는 정도만 한다.
물건도 마음이 깃드는 것이라
고르는데 한참 시간을 보내지만,
받는 사람이나 옆에서 보는 사람에겐
기분에 따라 그냥 고기, 굴비, 과일로만 보이겠지.
안부전화를 하고
카드에 몇 자 적는 것처럼
비슷한 말을 반복하게 된다.
애틋하게 뭔가 생각해 내기가 너무 어렵다.
이게 진심인가 아닌가
왜 그럴까
언제까지나 이런 것인가
생각을 많이 하면
당장은 아무 일이 없는데도
목이 뻣뻣하게 아파서
그쪽으로 가지 않으려 애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막연한 것에 위로받는다.
가까운 사람들의 말은
진심이라도 와닿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예전에 서울에서, 추석을 며칠 앞두고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손목 사이를 다쳤다.
병원에 가니 골절이라고 깁스를...
애들이 어릴 때라 손이 늘 바쁠때
더구나 추석인데
가까이에 도와주는 친구가 살았지만
명절에는 손을 빌릴 수도 없고 난감했다.
어찌어찌 장을 봐서 하루 전에 시댁에 갔는데
모든 것은 예상 그대로...
차라리 다른 곳이 크게 골절되었더라면
아예 병원에 입원했을 테니
그 편이 나았으련만, 그런 생각을 했었을 거다.
시부모님과 남편이 큰아이를 데리고 성묘를 가고
대략 5시간쯤, 둘째 아이랑 있으면서도 쉴 수가 없었다.
뭐라도 만들어야겠는데 재료를 씻기도 손질하기도 너무 어렵고
당장 어디서 사 올 수도 없고..
결국 내 손으로 깁스를 잘라내고 음식을 만들었다.
손이 아주 부러진 건 아니니까.
칼질이 제대로 되진 않았지만 국을 끓이고 전을 부쳤다.
그래야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것도 삐딱하게 보면..
다 할만하니까 했겠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잖니.
그런 생각은 사람을 참 많이 아프게 한다.
드라마를 보며
아유 저런 멍청이,
소리를 질렀어야지..
나도 모르게 찍찍거리며 꺼버릴 때가 많았다.
위의 내용을 바꿔보자면,
며느리가 손을 다쳤지만
혼자서 추석 음식을 마련했고
시부모님은 무척 고맙게 덕담으로
훈훈한 저녁시간이 되었다면...
드라마가
너무 재미없었겠지.'일상(日常記録)'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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