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 존경하는 교황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단원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유정(가명)이라고 합니다. 우선 이렇게 교황님께 편지를 쓰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이렇게 관심을 두고 우리나라에 방문해주신 것 또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할 말이 너무 많기도 하고 부족하고 서툰 글이겠지만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고 편히 봐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저는 단원고등학교의 대표학생이 아닌 2학년 한 여학생의 입장으로 120일 동안 느낀 감정과 심정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120일이라는 시간동안 전 너무 많이 아팠습니다. 행복했던 하루였어도 밤마다 잠이 들 때면 친구들의 사진을 보고 날마다 엄마 몰래 눈물을 훔치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들 곁에 가고 싶은 마음과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 이 한심한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친구들의 사진만 보며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우리가 바다에 나와 병원에 갔을 때, ‘어른들이 말하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TV를 보면 사망자 수와 실종자 수가 자막으로 나옵니다. 사망자 수는 늘어나기만 하는데 작은 방안에 갇혀 ‘어른들이 말하는 상담의사’와 우리의 안부를 묻는 쓸데없는 얘기만 합니다. 우리 모두는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해야 상담이 끝납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제 매일 괜찮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엔 진정한 치료는 그 누구도 아닌 우리를 버리고 제일 먼저 안전하게 구출된 선장과 그 외의 선원들, 이 사건과 관련해 잘못한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 제일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세월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우린 바보같이 기다리고만 있었는지, 본질적인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지 알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사실, 사과를 하고 이유를 알아도 용서할 수 없지만 그래야 곁에 없는 친구들과 유가족 분들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많이 참아왔습니다. 병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상담치료를 해도, 병원에서 울고 있는 우리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몰려와도, 다시 입시전쟁에 들어가 수업을 억지로 받아도, 울고 있는 친구들의 가족과 형제를 봐도, 그저 참고만 있었습니다. 사실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학생이라는 신분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펼칠 수 없었고 이제는 믿을 수 없는 한심한 언론에만 의지해 정부 입장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그 정부 입장 또한 이제 우리를 미치게 할 뿐입니다.
언론에서는 대학 특례입학과 특별법보상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국민의 반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직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친구들의 가족은 열악한 체육관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찰들은 보상이 아닌 진실이라도 알고 싶어 하는 우리 친구들의 가족을 폭행하기까지 합니다. 18살인 저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미친 것 같습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라 할지라도 이렇게라도 표현해 우리나라의 심각성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웃고 밥 먹고 껴안던 친구들이, 18년 동안 아끼고 쓰다듬으며 귀하게 키운 자식들이, 한순간에 모두 예고도 없이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는데 정부는 우리를 외면하려고만 합니다.
사실 이렇게 세월호 사건이 이슈화된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만약 조용히 이 사건이 끝난다면 우리나라는 또 반복된 실수를 할 것이 분명하고 또다시 우리나라는 망가져 갈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님이 우리나라를 방문해주신 것이 정말 진심으로 위안이 됩니다.
교황님이 우리나라의 유일한 희망이라 확신합니다. 이제 겉만 선진국인 우리나라를 바꿔주세요.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무엇인지 우리가 우리나라를 믿을 수 있도록 이 썩어빠진 정부를 바꿔주세요.
32일째(14일 현재) 친구 아버지께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만을 바라보고 단식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마저 곁을 떠날까 매일 불안하고 무섭습니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리 큰 고통을 겪어야 할까요. 언제쯤 이 고통이 끝이 날까요?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어른들만 믿다가 다신 볼 수 없게 된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가족들, 그리고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어 또 희생당하게 될 수 있는 사람들. 그 모두를 위해 특별법제정과 친구들이 왜 벌써 우리 곁을 떠나게 됐는지 그 진상규명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제 더 이상 정부는 우리말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분명 교황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나라와 정부를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아니 많이 욕심을 내자면 이 두 가지뿐만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정부의 만행을 비판해주시고 바로잡아주신다면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릴 것입니다.
저희는 이제 어른들에게 신뢰를 잃었고 이 세상에 대해 신뢰를 잃었습니다.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와 같은 학생들에게 이 나쁜 세상을 물려주어 죄를 짓지 않게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서툴고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세월호 생존학생이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합니다. 본인의 요구로 가명으로 싣습니다. -편집자-
한겨레<조현의 통통통>
박재동 화백
내 고향집에서 기차역에 가는 십리길 중간엔 공동묘지가 있었다. 공동묘지와는 좀 떨어진 바로 길가엔 무덤인지 아닌지 분간키 어려운 조그만 봉분이 있었다.
어린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그 부근을 지날때면 알 수 없는 슬픔이 손끝을 타고 전해왔다.
그 깊고 무거운 슬픔의 정체를 안 것은 아마 열살이 넘었을 때였을 것이다.
한 친척으로부터 “네가 장남이 아니고, 원래 네가 태어나기 10년도 더 전에 아들이 있었는데 딱 돌 때 세상을 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제서야 20년이 지나서도 그곳을 지날 때면 딱 1년 함께 산 자식이 그리워 어머니가 나 모르게 눈물을 적시는 것을 알게 됐다.
내게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해준 분도,
20년이 지난 그 때까지도 여전히 속앓이를 계속하던 어머니였다.
부모와 자식은 한 몸이다. <세설신어>란 책에 나오는, 단장(斷腸)이란 고사도 여기에서 유래했다.사냥 당한 새끼를 따라온 원숭이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겨 있었다는 이야기다.
동물도 그럴진데 인간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장성한 아들을 잃은 아픔을 쓴 소설가 박완서의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보면 친구가 박완서를 위로하기 위해
다른 동창이 반송장이 되어 누워있는 아들을 돌보는 집에 데려간다.
박완서는 그 상태에서도 동창 모자가 정을 나누는 것을 보고 부러워서 대성통곡한다.
내 자식도 저렇게라도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통곡한 것이다.
그러니 자식 잃은 부모와 함께 울어주고 슬퍼해도 그들은 고통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로 산생명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대부분이 고교생 자식들이다.
40일이 넘는 유민이 아빠의 단식에서 보듯 자식을 잃은 부모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유민이 아빠에게 욕을 퍼붓고, 심지어 “죽어버려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정부 여당은 세월호특별법 왜곡 소문 등으로 이런 음해를 조장했다. 국가정보원 사찰이 밝혀지고 있다.
그들은 죄과를 두려워하지않는듯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드시 인과응보와 심판이 있다는 것을 확언하지않은 고등종교는 세상에 없다.
맹자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측은’을 들었다.고통 당하는 이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 없다면 ‘인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왜나하면 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안타까워하며 구해주려는 마음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자연히 나오는 마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것은 유교의 핵심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와 진리의 요체다.예수는 신을 아버지로 인간들을 자식으로 삼아 모든 인류를 형제 자매로 묶었다. 석가는 동체대비라고 했다.
온생명이 한 몸이니 함께 슬퍼하지않을 수 없다.
독일 바이로이트대학교 우테 펜들러 교수가 유민이 아빠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 딸이 한국어를 공부하느라 서울에서 몇 개월 동안 지냈었습니다.
제딸이 그 배를 탈 수도 있었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내 자식의 죽음을 감당할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부모로서) 당신의 심정에 깊이 공감합니다”고 했다. 이게 인간이다.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천개의 바람이라면,
천만개의 바람이 되어...
- ‘영화인 1123인 선언’ 전문=
2014.10.2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168일이 된 지난 9월 30일 여야는 '양당 합의하에 4명의 특검후보군을 특검후보추천위원회에 제시한다. 특검후보군 선정에 있어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는 후보군은 배제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유가족들을 배제한 채 발표했다. '진상조사위원회 내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지난 8월 9일부터 동조단식에 돌입했던 영화인들로서는 허탈함을 넘어 참담한 합의문이다.애초의 주장을 완화하여,미흡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진상규명에 부합한 안이라면,어떻게든 합의에 이르고 싶었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의 바람마저철저히 묵살된 합의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재발방지대책강구'가 절실하다는 내용적 공감대로부터 출발하여, 실천적 연대활동을 벌여왔던 영화인들은 아시아 최대의 영화축제인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맞이하여, 전 세계의 영화인들과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바이다.
우리는 여전히 '진상조사위원회 내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특별법을 원한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재난관리 구조구난 체계가 작동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다. 짧게는 현 정부의 무능함이 부른 참극이지만, 길게 보면 생명보다 이윤을 보다 우선시했던 대한민국의 모순이 집약된 사건이다. 결국 살아있는 우리가 환부를 스스로 도려내지 않으면, 무고한 생명의 희생앞에 더욱 부끄러울 수 밖에 없다. 이는 정치권만의 문제도 아니며, 이념대립의 문제일수도 없다. 그러하기에 청와대, 정부, 정치권 스스로가 당리당략을 벗어나서 접근해야 할 문제이다. 권력의 입김으로부터 독립적인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는 방법론이 가장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할 주체를 세우는 일에서 가장 배제되어야 할 대상은 청와대와 여당이다. 정치권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상설특검법은 권력형비리에 초점이 맞추어진 법이다. 여야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중립적인 인사를 특검으로 임명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여야의 정쟁대상이 아니다. 세월호 특별법을 입안해야 할 주체들이 자신들의 이익에만 집착하여, 사법체계를 흔든다는 호도를 서슴지 않으면서까지 스스로가 진행할 수 있는 입법권을 내려놓고 있다. 내려 놓아야 할 것은 오히려 그들 스스로의 기득권이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수사기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해서는 최소한 여야와 유가족이 참여하여 특검후보군을 형성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유가족을 배제하고, 청와대와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가장 자유스러울 수 없는 여당이 되려 주도하는 특별법을 우리는 신뢰할 수 없다.
우리는 끝까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들과 함께 할 것이다.
4월 16일 이전, 세월호 참사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들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어느 누가 자신이 유족이 될 것이라고 상상이라도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참사 이후 가족들은 모든 언론의 중심에 설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과 SNS망을 통해 확산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 그들의 심정을 뒤로 한 채, 유가족들을 철저히 대상화 시킬 뿐이었다. '왜, 단 한명도 구조되지 못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희생자와 실종자, 그리고 생존자들을 위한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하는 가족들의 바람이 그렇게 무리한 요구였던가?
전국민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대통령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면담을 거부한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검법을 만들겠다던 대통령이 이제는 국회의 권한이라고 회피하는 것도 모자라, 최근엔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입법권에 대한 간섭조차 서슴지 않고 있다. 여당의 권한을 야당에게 넘기겠다던 여당대표는 말을 바꾸었고, 피해자단체에서 추천한 위원들(8명)과 국회에서 추천한 위원들(8명) 동수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유가족들의 의견을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수사, 기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궁색하기 그지없는 핑계를 대며 마치 유가족이 직접 수사, 기소라도 하는 양, 여론전을 펼치는 주체는 여당 원내대표이다. 유가족의 바람을 호도하기는 새정치민주연합도 마찬가지다. 총 3번에 걸친 여야의 합의과정에서 유가족들은 번번히 뒷통수를 맞았다.
일부 세력이긴 하겠으나 유가족들이 주장하지도 않은 내용을 끼워넣은 특별법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것을 넘어서, 종북세력. 폭력세력, 기득권세력으로 몰아가는 행동들과 조소들은 이미 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묻고 싶다. 그렇다면 4월 16일 이후 과연 무엇이 변했는가? 무엇이 밝혀졌는가? 무엇이 규명되었고, 어떤 대책이 세워졌는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사회는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낸 것이 없다.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들이 향후 어떤 결정을 내리던지 우리 영화인들은 가족들과 함께 할 것이다. 더욱이 다른 그 무엇보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여전히 요구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우리는 끝까지 든든한 벗이 되고자 한다.
2014년 10월 2일 세월호 참사 170일째 되는 날.